우리나라 VFX 역사와 현황
<디워>는 할리우드 못지않은 VFX 를 선보였다는 평을 받았다. 영화 속 이무기들의전투 장면은 관객의 눈을 사로잡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영화에서 CG 가 쓰인 역사는 비교적 짧다. <구미호>에서 여자 주인공이 여우로 변하는 장면 등에서 CG 가 이용된 것이 첫 사례인데,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쥬라기 공원>, <트루라이즈> 등의 할리우드 영화와 기술 차이가 극명하게 비교되었다.

그러던 분야가 디지털 액터 등의 기술력을 인정받아, 지난해한국의 VFX 스튜디오들이 모여서 만든 컨소시엄이 할리우드 영화 롭 민코프 감독의 <포비든 킹덤>의 VFX 작업을 총괄하는 성과를 거뒀다. 국내 VFX 역사와 성과를 점검해본다.
영화와 애니메이션에 적용되는 영상제작기법 가운데 컴퓨터 그래픽스(이하 CG)에 바탕을 둔 모든 종류 의 디지털 기법을 VFX(Visual Effects) 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영화 <킹콩>의 킹콩이나 영화 <반지의 제왕 2> 의 골룸처럼 완전한 CG 로 만들어진 가상의 디지털 배우부터, 실사 주인공의 액션 연기를 대신하는 디지털 스턴트맨,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광선검 등이 영화 속에 시각화되는 것을 말한다.


뤼미에르 형제가 1895년 영화를 발명했지만, 현실의 재현이 아닌 환상의 현실화라는 관점에서 VFX의 선구자는 조르쥬 멜리에(GeorgesMelies)다. 멜리에는 일찍이 <사라진 여인, 1896년>,<유령의 성,1896 년> 등에서 환상을 시각화하는 특수 촬영 기법들을 발명했다. 페이드디졸브, 이중인화, 매트, 고속/저속 촬영, 애니메이션 기법, 미니어처촬영 등 이후 100 년간 특수효과의 고전으로 자리 잡게 될 많은 기법들이 1900년대 초반에 이미 개발되어 실제 적용되었다. 그의 대표작인 <달세계 여행, 1902년>은 이러한 기법 들을 이미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미국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황금기라 불리는 1930년대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VFX상’부문이 신설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공포 영화 장르가 인기를 누리게 되는데, 공포 영화의 괴물 표현을 위해 특수 분장 및 스톱모션 촬영이 크게 발달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특수분장 괴물의이미지는 <프랑켄슈타인, 1931년>과 <킹콩, 1933년>일 것이다.

1930년대의 전성기를 지나 40~50년대를 거치면서, 할리우드의 아성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 시기 할리우드를 가장 위협한 것은 바로 텔레비전이었다. 할리우드는 텔레비전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관객들에게 스펙터클한 시각적 체험을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1920년대 후반 개발된 유성영화 및 컬러영화에 더해, 이 시기에 개발된 3D 영화, 와이드스크린(시네라마, 시네마스코프), 스테레오 시스템 등은 <벤허, 1959년>,<사운드 오브 뮤직, 1965년>과 같은 거대 규모의 사극 또는 뮤지컬로 제작되어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이 시기에 상대적으로 VFX의 기술개발 자체는 두드러지지 않았으며, 1930년대에 이미 개발된 특수 분장 기술들이 <지구 최후의 날, 1951년>과 같은 소위‘B급 SF 영화’를 통해 반복 재생산되었다. VFX기술 발전이 다시금 시작된 계기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 의 1968년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통해서다. 감독을 맡은 스탠리 큐브릭과 VFX 담당이었던 더글라스 트럼블은 그 동안 축적되어 온 특수효과의 모든 기술을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총동원한 끝에 관객들에게 전혀 다른 시각적 경험을 제공했다.

이 영화는 시각적 표현력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비슷한 시기의 컴퓨터 그래픽스 기술과 연동되면서 결국 <스타워즈, 1977년>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된다. 즉, VFX의 진정한 역사 는 <스타워즈>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영향력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당시 감독이었던 조지 루카스는 ILM 이라는 전문 VFX 회사를 설립하고 <스타 워즈>를 제작하면서, 영화 속에 사용되는 기술을 직접 개발하고 이를 축척해 나갔다.

<스타워즈>는 기존의 수공예적 특수 분장, 미니어처 제작 기술을 고스란히 이어받는 동시에 블루스크린, 매트페인팅, 영상 합성 등 신기술을 개발, 적용했다. <스타워즈 4: 새로운 희망, 1977년>에서 애니메이션 합성 및 로토스코핑은 수작업으로 이뤄졌다.<스타워즈>의 상징과도 같은 광선검 장면은 실사 촬영본 위에 디자이너들이 일일이 광선을 셀 애니메이션으로 그려 넣은 뒤 합성하여 만든 것이다. 이후 시리즈가 발전하면서수작업은 빠르게 자동화 되었고, 컴퓨터가 많은 부분을 담당하면서 CG 장면이 영화 장면에 삽입되기에 이르렀다.
<스타워즈>가 영화 속에 CG 가 삽입된 최초의 영화는 아니었다. <스타워즈>보다 1년 앞서 <미래세계, 1976년>에서 CG 가 처음 도입되었지만, 조지 루카스는 자신의 영화 제작사인 루카스 필름 안에 픽사 컴퓨터 그래픽 시스템 부서를 두고 기술을 개발하여, <스타워즈>의 ‘데스스타 구조 브리핑 장면’에서 CG 를 사용했다. 1982년 디즈니는 영화 <트론>에서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수준인 15분 분량 235 컷을 CG 로 처리했다.
이 영화는 VFX를 영 화 제작의 보조 수단이 아닌, 주요 표 현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입증하기도 했다. <트론>의 시도는 1984년 <최후의 스타파이터>의 성공으로 이어 진다. 전체 영화의 30분 분량을 차지하는 우주 장면을 기존의 세트 촬영 및 미니어처 촬영대신 CG 로 대체한 이 영화는, 큰 성공을 거두며 당시 ‘가 장 성공적인 CG 삽입 영화’라는 평을 받기도 하였다.
1985년 <피라미드의 공포>에서는 기존의 매트 합성 작업이 디지털화되었 고, 컴퓨터에서의 모델링, 애니메이션 작업도 소프트웨어화되면서 작업 공정의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이후 <인 디아나 존스> 시리즈, <로보캅> 시리 즈,<터미네이터, 1984년>, <고스트 바스터즈, 1984년> 등의 영화를 통해 CG 에 기초한 VFX 는 할리우드 오락 영화의 필수 요소로 자리잡아간다.
하지만 그 당시 CG 는 실사와의 합성 및 배경 표현을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 되고 있었다 .CG 기술이 영화 속 캐릭터에까지 직접 반영된 디지털 캐릭터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어비스, 1989년>다. CG 로 표현된 물기둥은 얼굴 애니메이션을 통해 표정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관객 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진정한 디지털 배우의 힘이 폭발한 것은 바로 <터미네이터 2, 1991 년>에 등장한 액체 금속로봇 T1000 을 통해서였다.
또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 1993년작>에서는 그전의 애니매트로닉스를 이용한 공룡 모형에 의존하던 공룡 영화를 완전히 CG 로 만드는 전환점이 됐다.
영화 역사상 최대 흥행기록을 세운 <타이타닉, 1997년>의 경우 타이타닉호 모형 촬영과 CG 장면 사이의 이음새를 찾기 어려우며, <매트릭스, 1999>, <해리포터 시리즈, 2001~현재>, <반지의 제왕 시리즈, 2001~2003> 에 이르면서 분명히 그것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은 환상적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로케이션 촬영을 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사실감이 높아졌다. 그리하여 지난 2005 년 공개된 <킹콩>의 킹콩과 <나니아 연대기, 2005년>의 사자 아슬란까지 100% CG 작업에 의해 제작된 디지털 액터가 인간 배우들을 제치고 주연의 위치까지 오르게 됐다.
■ 우리나라 VFX의 과거와 현재
국내 영화에서 VFX 기술을 본격적으로 활용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다. 이전에는 새로운 시도 없이 기존의 귀신 캐릭터를 반복 재생산하는 특수 촬영,특수 분장, 미니어처 등의 고전적인 기법을 사용한 영화들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으로 CG 컷이 등장하는 것은 1994년 <구미호>에서 여자주인공이 여우로 변하는 모핑 장면과 정사를 나눈 남녀의 몸 위로 구슬이 움직이는 장면 등이다.
그러나 할리우드 수준과는 많은 기술 격차가 있었다. <은행나무침대, 1996 년>에서 <사랑과 영혼>을 연상 시키는 육체 투과 장면 등이 CG로 표현되었고, <퇴마록, 1998년>에서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개념을 최초로 사용했는데, VFX와 블록버스터 전략의 시너지 효과를 잘 보여준다. 기존의 영화가 단순히 1~2분 가량의 CG 를 사용한 것에 비해 총 8분에 달하는 CG 신이 포함되어 미니어처, 화공 특수 효과 등 완성도 높은 다양한 영역의 VFX 를 보여주며 진정한 의미의 VFX 영화로 평가받았다.
같은 해 유사 할리우드 전략을 표방한 <쉬리, 1998년>는 전례 없는 흥해 성공을 이뤘다. 유사 할리우드 전략이란, 단순히 상대적으로 비싼 제작비, 마케팅 비용을 퍼붓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할리우드 수준에 근접한 VFX 완성도를 포함한다. 고층 빌딩 폭파와 도심 총격전 등 <쉬리>의 볼거리는 관객들에게 전에 느낄 수 없는 만족감을 주었다.
<쉬리>의 성공 요소 중 하나로, 기존 영화보다 한 차원 높은 VFX를 주목 받자, 이후 제작되는 영화들은 제작비 중 상당 부분을 VFX에 배정했다. 아예, VFX의 우수성을 광고 전략으로 내세운 영화도 등장하였다. 1999년의 <유령>, <자귀모>, <용가리>,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의 영화들은 20 억 원이 넘는 당시로서는 대규모의 제작비 가운데 상당 부분을 VFX 부분에 투입하였고, 영화 전체 분량 중 20 분 이상의 화면에 폭파, 미니어처, 특수 분장, 매트페인팅, CG 등 각종 아날로그/디지털 VFX 기술을 동원했다. 바야흐 로 한국 영화의 VFX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심지어 2001 년의 <화산고>는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영화의 대부분을 CG 로 채우는 실험적인 시도를 했다.
이후 VFX 기술은 더욱 빠르게 성장하여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 >에 이르러서는 할리우드 수준에 근접 한 자연스러운 VFX가 적용되기 시작하였다. <태극기를 휘날리며>에서 수많은 중공군과 피난민 등은 모 두 CG 로 합성된 것이며, 총격 장면 등도 모두 CG 를 이용한 VFX 기술 효과다.
이처럼 최근 한국영화에서 CG와 VFX 기술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오래전 흑백 TV 뉴스 화면에 주연 배우가 감쪽같이 등장하기도 하고, 주먹에 맞은 사람이 하늘로 날아오르며, 수만 마리의 벌레 떼가 달려들어 배우의 온몸을 물어뜯기도 한다. 시각 효과는 영화 표현의 한계를 없애고 사실감과 완성도를 높여줄 뿐만 아니라, 높아진 관객들의 기대 수준에 부응해야 하는 영화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실미도>에 이은 <태극기 휘날리며>의 성공으로 한국 영화도 1천만 관객 시대를 열었고, 그 숨은 공신은 첨단 기술을 동원한 디지털 VFX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최단 기간에 1천만 관객을 돌파한 <태극기 휘날리며>는, 첨단 영상 기술과 장비를 결합해 만든 결과물이다. 10만 명이 나오는 중공군 장면을 찍기 위해 동원된 엑스트라는 불과 2~3백 명이다. 1982 년 <간디>에는 실제로 30만 명의 군중이 동원되었다고 하니, 그 수많은 엑스트라의 관리와 인건비 문제를 생각하면 실로 디지털 VFX의 힘은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영화 <귀신이 산다, 2004년>에서 손과 발이 따로 집안을 돌아다니는 장면, 여주인공의 애인이 죽어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장면, 닭들이 지붕 위로 공중 부양하는 장면 등에서 VFX가 적용된 사례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장면을 재현하기 위해 모션 컨트롤 카메라를 이용하여 촬영해, 나중에 CG를 합성하는 기술을 사용했다.
영화 <호로비치를 위하여>의 한 장면인 아래 그림은, CG를 이용한 VFX 작업의 예를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 피아니스트의 얼굴에 마커를 붙이고 촬영하여, 피아니스트의 얼굴을 영화배우의 얼굴로 교체했다. 여기에 쓰인 기술은 카메라 트래킹 기술 및 3차원 스캔 기술, 합성 기술 등이 적용되어 마치 실제 영화배우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구현했다.
영화 <한반도>에서는 해상 위의 해군군함 장면 및 건물 폭파 장면 등이 영화 속의 VFX 장면들이다. 아래 그림은 해상에서 군함을 추가하는 과정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해상에서 군함을 추가하는 장면에서는, 수면을 카메라 트래킹 기술과 합성 기술이 합쳐져 이러한 장면을 생성해 낼 수 있었다.
<중천>에서는 실제 배우를 대신할 ‘디지털 액터’를 개발했다. 즉, 실제 배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외모와 동작을 표현하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현되는 캐릭터 제작 기술로 기존의 실존하는 배우, 방송인 등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러한 디지털 액터가 대형 스크린에서도 자연스럽게 보여지기 위해서는 얼굴 표정 캡처, 근육을 이용한 사실적인 얼굴 표정 표현, 실제 인간 수준의 피부 렌더링, 사실적이면서도 섬세한 머리카락과 옷감 표현 시뮬레이션 등의 다양한 기술을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반지의 제왕>에서 보여준 사실적인 대규모 군장장면의 연출은, 영화의 극적장면 표현을 극대화할 수 있어 널리 활용되고 있는 기술이다. 그러나 수만 명의 사람,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을 제작하기는 쉽지 않다. 엑스트라가 동물, 괴물이라면 어떻게 동원할 수 있겠는가?기존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대규모 군중 처리’ 기술을 개발하여 그 대안을 모색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도 이제 할리우드와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지속적인 개발과 적용이 이뤄져야 가까운 시간 내에 경쟁력을 보유할 수 있다. 특히 선진 스튜디오는 대외에는 알리지 않은 채 콘텐츠 제작 및 경쟁 우위를 위해 자사만의 특성을 반영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이제 는 사람을 넘어 실사 촬영 비중이 높은 영화, CF 등에서는 인 하우스 렌더러를 통해 말, 개, 물고기 등의 세밀한 표현을 가능케 하고, <반지의 제왕>에 등장한 ‘골룸’, ‘공룡’과 같은 상상 속의 생명체를 제작할 수 있는 디지털 크리처를 개발할 예정으로 그 귀추가 주목된다.